top of page
Search

[욥기 19장] 고난-고립-고독

욥기 19장에서 욥은 총체적인 인간관계의 고립현상을 경험하고 있다(13~16절).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욥은 그의 형제들로부터, 아는 지인들로부터, 친인척으로부터, 심지어 집에 있는 남종과 여종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천대받아 철저하게 고립되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아내와 친구들조차도 욥에게 등을 돌리고, 동네 어린 아이들까지 그를 조롱하고 있다(17~19절).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이처럼 긴 고난을 겪고 있는 욥은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표현하면 인격적인 인간관계가 완전히 파괴된 상황, 철저한 고립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욥은 마지막까지 자신 곁에 함께 있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21~22절).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참으로 애절하고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고립이라면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아마 욥도 그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23~24절에 보면 그가 죽은 이후에 그 자신의 유서를 남기고 싶다는 간접적인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이처럼 욥은 깊은 <<외로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헨리 나우웬은 「영적 발돋움」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외로움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본질적 외로움, 곧 ‘고독(Solitude)’으로, 다른 하나는 자초한 외로움, 곧 ‘고립(Lonely)’으로 구분한다.


고독은 고립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열려 있지만, 고립은 함께 있어도 막혀 있다. 고독은 세상 한복판에서도 고요하지만, 고립은 고요 속에서도 혼란스럽다. 고독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장소이지만, 고립은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분열과 단절의 장소이다. 그래서 인간의 외로움은 고립이 아닌, 고독한 자리에서만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 의미로 충만해질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고난을 겪는 욥이 철저한 관계적인 <<고립>>으로부터 점점 <<고독>>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는 점이다(25~26절).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많은 경우 이 구절을 부활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지만 실제로 욥의 상황과 연결 지어 본다면 관계적인 고립으로부터 탈피(육체 밖으로)하여 자유, 그리고 고독을 통한 하나님의 재발견(나의 대속자)으로의 거듭남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욥의 고난은 관계적인 ‘고립’으로부터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인 ‘고독’으로 승화되어 하나님과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로움>>을 겪는 이유는 고독의 자리를 통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라고 주신 기회이다. 그리하여 고독을 통한 더 큰 변화와 성장의 계기와 성숙의 은혜를 누리기 위함이다. 살다보면 겪게 되는 관계적인 단절이나 소통의 장애나 제한되고 속박된 삶이나 막혀진 진로와 계획을 통해서 깊은 외로움에 빠져 그저 고립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 그러한 외로움과 고립의 상황을 하나님과 독대하는 특별한 자리, 고독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은혜요, 신앙의 힘이다.


주님, 외로움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고립’에만 머물지 말고, 그 자리로부터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인 ‘고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신앙에 더 큰 변화와 성장과 성숙이 있게 하소서. 기도하기 위하여 날마다 한적한 곳(고독)을 찾으셨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詩 고독한 이유 / 김현승


고독은 정직하다.

고독은 우상(神)을 만들지 않고,

고독은 무한의 누룩으로

부풀지 않는다.


고독은 자유다.

고독은 군중 속에 갇히지 않고,

고독은 군중의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

목적 위의 목적이다.

 
 
 

Comments


Untitled%20design_edited.png
율촌한인교회
    

ewellkoreanchurch@gmail.com

Ewell United Reformed Church
London Rd, Ewell, Epsom,
KT17 2BE

 
하나님을 예배하는 양무리
Ewell korean church
  

©2021 by Ewell Korean Church.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