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5장] 하나님 상대하라 그분처럼 보게 된다.
- Dana Park
- Oct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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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5장부터 21장까지 2라운드가 다시 시작된다: 15장 엘리바스, 16~17장 욥, 18장 빌닷, 19장 욥, 20장 소발, 21장 욥. 순서는 1라운드와 동일하다.
그런데 욥과 세 친구들 간의 대화가 1라운드에서 2라운드로 옮겨지면서 양측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진다. 욥은 하나님을 점점 향하고 있는 반면, 엘리바스는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힌다(4~9절).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엘리바스는 1라운드에 비해 전혀 변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우악스럽고, 직설적이고, 더 거세졌다. 흔히 욥의 세 친구들 중에서 제일 연장자를 엘리바스로 꼽는다. 그래서 10절에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고 은근히 자신을 내세운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유(裕)해진다. 거기에는 생리적인 호르몬의 변화가 한 몫을 하기도 하고, 마치 모난 바위가 모진세파로 깎여져서 평평한 반석이 되듯이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원칙과 법전을 끝까지 붙드는 한, 부드러움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고집과 아집으로 인해 더 경직된다.
우리가 엘리바스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14절은 그의 표정을 충분히 연상케 한다.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이 말은 엘리바스의 <인간이해>를 대변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것. 다시 말하면 ‘욥, 네까지 것이 무엇이기에’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자신의 원리 원칙만을 붙들고 사는 그의 얼굴 표정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달갑지 않다. 이런 표정은 오래도록 굳어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원칙에 입각하여 사람을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곳곳마다 엘리바스의 표정들은 난무하다. 어둡고 경직되고 무겁다. 밝고 온화하고 명랑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안타깝다.
욥은 어떠한가? 욥도 고난으로 인해 침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보는 시선만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욥 7:17절과 시편 8:4절 참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욥은 원리 원칙에 입각하여 인생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고난을 겪으면서 그 눈이 생긴 것이다. 즉 관점이 새로워졌다.
눈으로는 빛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프리즘을 통하면 오색찬란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 감들을 포착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프리즘을 통과하게 되면 인생은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보는 시선으로는 답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그 안에 상상하지 못한 정답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우리네 표정도 밝아진다.
엘리바스와 욥의 표정이 서로 다른 이유는 ‘나이’ 차이가 아니라 ‘시선’ 차이다. 원칙만을 상대하던 엘리바스에 비해, 욥은 하나님을 직접 상대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선을 얻는다. 인생을 지으신 그 분의 눈으로 인생을 다시 보게 된다. 비록 욥이 처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고 표정도 점점 변하고 있다. 이는 고난이 준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을 상대해보라. 그러면 다르게 보인다. 문제에만 집착하면 그 문제만 보이지만, 문제 너머에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분의 시선으로 새로운 정답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밝은 표정으로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 여정’이다.
주님, 주님 상대하여 주님처럼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 보아서 우리의 표정을 바꾸소서. 시선을 여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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