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6장] 답을 볼 수 있는 눈(vision)
- Dana Park
- May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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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6장에 나열된 세 이야기(1. 쇠도끼 에피소드, 2. 도단 성 에피소드, 3. 사마리아 기근 에피소드)중에서 두 번째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능력은 <보는 것>으로 평가됩니다(8~12절).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엘리사는 문제(problem)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는 문제들로 가득 찼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문제에 대한 답을 볼 수 있는 눈(vision)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을 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엘리사의 사환입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항상 문제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문제만 크게 보일뿐 답은 보이지 않습니다(13~15절).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Oh, my lord, what shall we do?)하니.]
철학에서 터널 뷰(tunnel view)와 필드 뷰(field view)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전자는 좁은 소견을 일컫는 반면, 후자는 넓은 시야를 말합니다. 전자는 나무를 보는가 하면, 후자는 숲을 봅니다. 전자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반면, 후자는 문제 너머에 이미 존재하는 답까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엘리사의 사환은 몇 겹의 터널에 갇혀 있습니다. 즉 그는 도단이라는 성뿐만 아니라 그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 군사와 말과 병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는 문제의 터널에 갇혀서 답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16~17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는 문제보다 답들이 훨씬 많다!!!고 말합니다. 내 생각에 갇힌 좁디좁은 터널(tunnel)로부터 뛰쳐나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펼쳐 놓으신 필드(field)로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거기에는 문제를 훨씬 능가하는 답들이 수두룩 빽빽하게 별천지처럼 널려 있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vision)을 열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당초 답이 없을 것이라는 나의 터널을 빠져나와, 문제보다 더 많은 답들이 펼쳐진 그 분의 필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vision이 아닐까요? 오늘도 우리의 비전이 열려서 답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주님! 내 생각이라는 편견의 터널을 빠져나와 창조주께서 펼쳐놓으신 필드를 볼 수 있는 비전을 주소서! 우리에게 눈을 만들어주셔서 보게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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