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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6장] 영적 분별력

이 장은 남 유다의 12대 왕 아하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남 유다를 쳐들어 왔을 때, 아하스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앗수르 왕을 절대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적인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 후부터 앗수르 왕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아하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계속 이어집니다(10 이하):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아하스는 강대국 앗수르의 종교 벤치마킹(Benchmarking)을 합니다. 왜냐하면 앗수르의 힘의 핵심이 앗수르의 큰 제단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식양의 도면을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 아하스 왕의 태도에 대한 제사장 우리야의 반응이 더욱 놀랍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우리야 제사장의 역할은 왕의 행위에 대한 영적 사리분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경우, 그 일을 반대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새 제단을 완성합니다.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즉각적인 따름은 순종이 아니라 <맹종(盲從)>이라 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까지도 인신제사를 드릴 수 있는 그 미친 아하스 왕이 무서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결여된 복종은 결코 순종이 아닌 것입니다.


아하스의 미친 행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을 마음대로 변형시킵니다.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놋 바다를 놋 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 판위에 둡니다. 또한 앗수르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접근하는 안식일 전용 통로와 왕이 성전을 출입하는 전용 통로를 모두 없애 버립니다. 즉 왕으로서 성전 출입을 스스로 차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앗수르 왕에게 충성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직 앗수르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 왕의 이러한 행동을 <굴종(屈從)>이라 합니다. 이는 빌어먹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행위를 말합니다. 과거 모세 시대부터 이어온 성막의 전통과 솔로몬 시대에 주어졌던 성전의 전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 뜻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는 앗수르 왕에게 굴종합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최선의 순종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비굴한 복종, 곧 굴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제사장 우리야와 아하스 왕의 치명적인 과오(過誤)가 무엇입니까? 무분별(無分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탓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순종이라 착각하는 맹종들, 순종의 허울을 입힌 굴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유는 영적 분별력이 배제된 채, 하나님의 뜻이 결여된 탓입니다.


충성이라는 명목 하에 맹종과 굴종을 조장하지는 않습니까? 교회도, 세상 곳곳에도...

분별력 없는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따름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영적 분별력 없이는 순종이 아닌, 맹종과 굴종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참 순종은 영적 분별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주님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분별력 없는 복종을 조장하며, 그것을 순종이라 강요하는 이 세대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충고합니다(롬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교회는 맹종과 굴종을 강요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맹종과 굴종을 막기 위해 영적 분별력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목회자는 맹종과 굴종하는 성도를 충성된 일군이라 부추기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일깨워주어 참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뜻이 삶에 녹아들 때, 비로소 순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살면서 제사장 우리야와 아하스 왕의 행동을 많이 한 것 같아서 맘이 참 아픕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들을 맹종과 굴종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영적 분별력 없이 주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맹종과 굴종을 충성이라 여기며 하나님의 뜻에서 멀었던 지난날의 삶을 용서해 주십시오.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소서.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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