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장] 하나님의 음성인가, 사람의 소리인가
- Dana Park

- May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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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등극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될 시점에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솔로몬 재위 시절, 이집트 망명길에 올랐던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을 찾아와서 화친을 요청합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수장이요, 당시 이스라엘 온 지파들 가운데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대표로서 그는 르호보암에게 이런 간청을 합니다(4절).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여로보암의 제안은 솔로몬의 악정(惡政)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습니다. 즉 타락한 지혜자, 솔로몬의 통치는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민생을 깊은 수렁으로 빠트렸습니다. 이에 대한 반향(反響)으로 백성들은 여로보암을 앞세워 민심(民心)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의 제안에 르호보암 왕은 사흘의 말미를 청한 후 어전 회의에 돌입합니다.
열왕기 저자는 르호보암이 얻은 <사흘>을 전환점 마련을 위한 특별한 시간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을 향한 시간이 사흘이었고, 에스더가 일사각오로 사흘 금식을 선포했으며, 요나는 사흘을 물고기 배속에 머물렀고, 예수님께서도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개종 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먼 기간이 사흘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사흘의 기간은 모두 전환점에 해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르호보암에게 주어진 사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든지, 아니면 사람들의 소리를 듣든지, 양자택일하기에 충분한 시간임에 분명했습니다.
6~7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르호보암은 민심의 탄식 소리에 대한 천심의 긍휼을 담은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노(老)신하들의 제안은 단지 경험에서 어우러진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제안 속에는 하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If today you will be a servant to these people and serve them).] 이 말은 솔로몬 통치 초기에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해 오직 듣는 마음(지혜)을 구했던 모습과 흡사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10)”라고 보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자문을 저버리고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12~14절).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성경은 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이렇게 확답해 줍니다(15절).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이 말은 과거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르호보암에게 주어진 그 사흘 기간 동안에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줍니다.
삶의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그 사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냐 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냐? 아니면 사람들의 소리냐?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었는지에 관하여 조금만 관심을 가졌었더라면(영적 민감성을 유지했더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흘’이라는 영적 발돋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겠지요.
하나님의 음성은 (평소에) 이미 주어진 그 분의 말씀에 관심 가질 때, 쉽게 들려오며, 그 음성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법입니다. 육을 가진 우리는 육으로만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와 동시에 영을 담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영으로 임재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서 매 순간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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