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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장] 타작 마당의 비밀

역대하 3장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1~2절).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지 넷째 해 둘째 달 둘째 날 건축을 시작하였더라.]

그런데 이 구절과 병행하는 열왕기상 6장의 내용은 이러하다(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 성전건축 시점만을 알려주는 반면, 역대기 저자는 그 시점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보도하는 동시에, 장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예루살렘 모리아 산’과 관련하여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부각시키고,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과 관련하여 다윗과의 언약을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역대기 저자는 앞선 두 언약에다가 새로운 의미를 하나 더 추가시키고 있다. 그것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 솔로몬이 짓고자 하는 성전에 ‘타작 마당’의 개념이 추가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의 공통점은 무조건적인 은혜의 성격이 있다. 즉 쌍방의 언약이라기보다 일방의 언약에 무게를 둔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쪼개어서 서로 마주 보게 할 것을 요구하신 후에 그 사이로 아브라함이 통과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고 보도한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후손에게 땅을 줄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행해진 언약 체결의식에 따라 약속 이행의 책임이 쌍방이 아닌 일방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는 후일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방적인 죽음으로 대변된다.


또 하나는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일방적으로 ‘그 나라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은 왕조가 자주 바뀌고 멸망하였을지라도, 남 유다만큼은 끝까지 다윗 왕조가 계승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은혜에 기초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솔로몬의 성전건축이 이러한 일방적인 언약, 곧 무조건적인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할지라도, 정작 그 장소는 ‘타작 마당’에 위치한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이곳은 한 해 동안의 농부의 수고가 뚜렷하게 판가름 나는 곳이며,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곳이고, 기쁨과 환희와 후회와 탄식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곡간에 보관되든지 아니면 불속에 던져지든지 그 운명이 결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즉 타장 마당은 <심판의 장소>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관하여 이렇게 소개한다(3:11~12절).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있으니,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세례 요한은 ‘타작 마당’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라는 것과 그 곳은 양 갈래로 뚜렷하게 나눠지는 심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소개한다. 역사적으로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은 후일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비록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으로 그 후손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생명을 부지했고, 다시 포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정착했으나 성전은 타작 마당 위에서의 엄격한 심판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솔로몬에게 성전의 위치를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고 알려주는 이유는 ‘심판의 경각심’을 가지고 ‘회개하며 살라’는 아비 다윗의 애절한 충고가 그 속에 깃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세례 요한은 이렇게 충고합니다(마 3:10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지리라.]

그리스도인에게 예배 처소인 성전(교회)은 영원한 언약, 곧 일방적인 은총의 수혜 장소인 동시에, ‘타작 마당’ 곧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의 장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작 마당에서의 예배를 통해서 알곡과 가라지가 판별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회개하여 알곡으로 길이 남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타작 마당’은 영원한 은총의 처소가 될 것이다.


주님! 성전 곧 교회가 영원한 은총의 장소임과 동시에, 알곡과 가라지가 판별되는 타장 마당임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은총 안에서 회개로 나아가 알곡으로 길이 남게 하소서. 타작 마당의 주인이시오, 심판자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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