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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1장] 은혜의 원리

역대하 31장의 첫 구절은 이러하다(1절): [이 모든 일이 끝나매]


여기에 언급된 ‘이 모든 일’이란 과연 무슨 일을 말할까? 그것은 앞장인 역대하 30장에 보면 자세히 나온다(대하 30:23~27절).


[온 회중이 다시 칠 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 일을 즐겁게 지켰더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칠천 마리를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만 마리를 회중에게 주었으며 자신들을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도 많았더라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들과 유다에 사는 나그네들이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이 모든 일’이란? 히스기야 왕을 중심으로 하여 2주 동안 유월절 예식을 거행한 이야기이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큰 은혜가 임했던지, 예루살렘에 솔로몬이래 이런 기쁨이 없을 정도였다고 보도한다. 처음에는 유월절을 칠 일간 거행하려 했다가 그 칠일 동안 은혜가 멈추지 않자, 다시 칠 일을 더 연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멈추지도, 심지어 감당할 수도 없다. 슬플 때 눈물은 쉬이 그친다. 그러나 은혜가 임할 때 눈물은 멈출 수 없다. 무슨 일이든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피곤이 몰려온다. 그러나 은혜가 임할 때는 시간을 초월하고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래서 피곤한 줄도 모른다. 은혜라는 단어에 ‘불가항력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센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유는 나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직 그 은혜의 성격(저항할 수 없는 힘)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 앞에는 겸손해지고, 자랑할 것도 없고, 그저 감사하고 황송할 뿐이다.


역대기 저자는 이렇게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임한 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유월절을 마친 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의 삶의 이야기를 연장하고 있다. 즉 은혜 받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매우 흥미롭고 궁금해지기 때문에 역대기 저자는 뒤이어 그 이야기를 연장하고 있다(31:1절).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먼저, 은혜 받은 자의 눈에는 그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밖엔 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하나님 흉내 내는 것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우상’이라고 부른다. 유월절 은혜를 경험한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우상들뿐 아니라 내면의 우상들까지 모조리 타파한다. 일종의 ‘신앙개혁’이 일어난 셈이다. 이 개혁은 자기 힘으론 불가능하나, 오직 은혜가 임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둘째, 은혜 받은 자는 움키지 않고, 도리어 바친다(6~8절).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쌓인 더미들을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여기에 더미처럼 쌓인 것들은 은혜 받은 백성들이 드린 예물과 십일조 소산물들이다. 은혜가 없을 때는 자기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자, 하나님 것임을 인정한다. 부어주신 은혜로도 충분하니 더 가질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려 드렸는데 그것이 얼마나 많았던지 더미가 될 지경이었다. 이처럼 은혜가 임하는 자리에는 모자람이 없다. 차고 넘치고, 쓰고도 남고, 다 주고도 더 쌓이게 된다. 이것이 은혜의 속성이다.


마지막 셋째, 더미 은혜는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여 나눈다(15절 이하). 히스기야는 은혜의 더미들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다 나눠주게 한다. 쌓아두지 않고 골고루 나누었더니 31장 마지막 절(21절)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형통하였더라.”


그렇다. 은혜를 쌓아두면, 녹이 슬고, 좀이 먹고, 도둑이 들어와 훔쳐가듯, 스스로 소멸된다. 그러나 은혜를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면, 형통으로 되돌아온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마다 더미로 쌓인 그 은혜를 흘러 보냈을 때, 곳곳마다 형통하게 되어 더 큰 은혜로 회수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은혜답게 쓰면, 하나도 버릴 게 없고, 낭비될 리도 없다. 그래서 은혜인 것이다. 이 은혜의 원리대로 살아서 형통하기를 축원한다.


주님, 먼저 은혜부터 경험하여 은혜를 더미로 바치고, 더미 은혜를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 나누게 하소서. 그리하여 형통이 무엇인지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하소서. 은혜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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