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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9장] 기독교 윤리의 기준선: 하나님과 그 분의 뜻

기독교인의 윤리는 하나님의 뜻에 기준 한다. 즉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면 의로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의로워지려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리 착하고 의롭고 옳다고 여길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기준선을 넘게 되면, 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과 윤리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기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주인님)으로 고백하고, 평생을 주님(주인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받들고 사는 것이다.


역대하 19장의 첫 머리에는 여호사밧 왕을 질타하는 선견자 예후가 등장한다. 그 훌륭한 왕이 왜 하나님의 선견자에게 책망을 들어야 했을까? 역대기 저자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준다(1~2절).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방금 전까지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방문하였고, 그와 함께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사밧 왕은 이미 아합 왕과 정략결혼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즉 여호사밧의 장자 여호람과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태어난 딸 아달랴가 정혼을 맺었기에 여호사밧과 아합은 사돈 지간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아람에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전쟁 중에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다행히 빠져나와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복귀했던 때였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보낸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에게 질타와 책망을 서슴지 않고 퍼붓고 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의 그 행위가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기준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이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선하려 했던 것이 그에게 가장 큰 화근이 되었다.


예후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기준선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돕는 것이 좋고, 또 누군가를 돕고 싶어도 <악한 자>를 도와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또한 아무리 사랑하는 것이 좋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정략결혼을 맺고, 그를 도와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한 것은 이미 하나님과 그 분이 정하신 뜻을 넘어 버린 것이 되고 말았다. 기준 없이 돕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 기준 없이 사랑하는 것은 큰 범죄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어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그 악한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하나님을 미워했던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연합해서 전투에 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호사밧은 이런 기준이 없었던 탓에, 하나님으로부터 책망과 질타를 받았던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불신자에 대해서 이 부분을 적용하려 한다. 그런데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기준선은 불신자가 아니라 <악한 자>이다. 또한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다. 이 부분을 오해한 나머지, 먼저 복음을 믿은 우리가 불신자를 돕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복음이 어떻게 전해지겠는가?


하나님의 기준선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몰라서 믿음이 없는 불신자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악한 자>를 돕는 것은 <죄>가 된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큰 <범죄>이다. 돕는다고 다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도와야 선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랑한다고 다 사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랑해야 참 사랑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과 윤리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과 의와 영광으로서의 착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주님! 우리의 생각이 삶과 윤리의 기준이 되지 않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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