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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우리는 누구인가?

에스라 9장에서는 <우리>를 대표하여 에스라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회개 기도를 하고 있다(3, 5절).


왜 그가 <우리>를 대표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의 기도문 속에 <우리(히브리어, 아나하누)>라는 단어가 자그마치 33번이나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6~15절).


또한 그가 왜 회개 기도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들과 통혼을 하였기 때문이며, <우리>라는 이들 중에서도 특히 방백들과 고관들, 곧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통혼하는데 으뜸이 되었기 때문이다(1~2절).


이방인과 통혼이 그렇게 큰 죄가 될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통혼 및 잡혼은 신앙의 변질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교화의 온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자마자, 가나안 7족속부터 그 땅에서 몰아내라고 하셨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 몰아내지 못한 탓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흠집을 내게 된다. 즉 이방인과의 통혼으로 신앙이 변질되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스라의 기도문 속에 무려 33번이나 등장하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킬까? 에스라의 기도 몇 구절을 살펴보자(8~9절, 13절).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여기에 언급된 <우리>란 바벨론 포로생활을 다 겪은 후 다시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된 이들>이다. 신약 식으로 표현한다면, <죄 사함과 거듭남을 체험한 이들>이다.


에스라가 <우리>라고 불리는 이들을 대표하여 통분하며 회개 기도를 한 이유는 이미 죄를 회개한 자들이 또 다시 죄 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에 관하여 안타까워 탄식하였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포로생활까지 겪었는데 또 다시 그 일을 반복하는 바보스러운 행위에 대하여 눈물로 탄식한 것이다.


에스라는 <우리>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여긴다. 여기에 <우리>란 단순히 <나>의 복수형인 <우리>가 결코 아니다. 우리란 <구원받은 성도>이다. 그래서 특별하고, 고귀하고, 소중하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을 덧입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더럽히는데 함부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 아예 죄를 범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앞 다투어 죄 속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거룩에 흠집 내는 것을 하찮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데 그렇게 쉽게 <우리>를 포기한단 말인가!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 관하여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히 6:4-6. 히 10:29).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10:26,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마지막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너희는 생각하라.” 그렇다. <우리>라는 존재를 가볍게, 너무나 쉽게, 죄 속으로 던지는 행위에 관하여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말할 때도, 일할 때도, 쉴 때도, 친구와 함께 할 때도, 심지어 잠잘 때도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거룩함과 존귀함이 유지될 수 있다.


주님,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생각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가치를 귀히 여기며, 거룩함과 존귀함을 유지하게 하소서. 우리를 죄 가운데 속량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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