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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기쁘고 상쾌한 인생

열왕기하 5장의 주요 캐릭터는 나아만 장군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5:1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영어 성경(NIV) 마지막 부분에는 [He was a valiant soldier, but he had leprosy.]라고 번역합니다. 문법에서 ‘등위접속사’로 쓰이는 But은 문장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그림자같이 따라다닙니다. 어쩌면 이 단어(But/그러나)가 <인간 실존>을 간접적으로 대변하는지도 모릅니다.

과학, 의학, 기술 문명은 발전합니다. but(그러나) 알 수 없는 불치병, 난치병의 수는 더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화려한 인생을 자랑합니다. but(그러나) 심층적으로는 그 속에 비참한 인생이 감춰져 있습니다. 육적인 만족은 채워집니다. but(그러나) 영적인 허기는 더합니다. 풍요롭습니다. but(그러나) 고독합니다. 여유롭습니다. but(그러나) 공허합니다. 이제 살만합니다. but(그러나) 의미와 목적이 없습니다.


원래 <나아만>이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과 상쾌함’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뗄 수 없는 <but의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가 바로 <인간 실존>이 겪는 한계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드디어 나아만이 but의 꼬리표를 떼고, 자기 이름의 뜻대로 ‘기쁘고 상쾌한 인생’을 살게 된 happy ending story를 전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에게 but(그러나)의 꼬리표를 떼어주기 위해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준비하십니다. 첫째는 복음의 메신저(messenger)입니다. 나아만이 아무리 전쟁 용사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나병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안에 메신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2~3절).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신분상으로 나아만 장군과 이스라엘 포로 소녀는 비교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ut이라는 꼬리표는 가장 하찮은 그 메신저의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뗄 수 있습니다. 직위, 경력, 학력, 신분, 경험, 지식,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만이 메신저의 소리를 듣게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찮게 보이지만 but의 꼬리표를 떼 주기 위한 복음의 메신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낮추면,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메시지(message)입니다(10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아만은 큰 장애물에 부딪힙니다(11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데 절대적인 방해꾼은 <내 생각에는...>입니다. but의 꼬리표는 항상 <내 생각>에 찰떡같이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셋째는 7번의 완전한 순종입니다(14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특별히 7번을 명시한 것만 보아도 <완전한 순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지에 대한 <순종>을 말합니다. 즉 순종의 퍼센티지(percentage)입니다. 나아만이 요단강 안에서 ①의심-②실망-③회의-④갈등-⑤유혹-⑥좌절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100%의 온전한 ⑦순종까지 도달합니다. 그럴 때, but의 꼬리표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제 나아만은 문자 그대로 ‘기쁘고 상쾌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도 but(그러나)의 꼬리표가 여전히 부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복음의 메신저들이 널리 포진되어 있고,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겸손>하게 메신저의 소리를 듣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순종>의 퍼센티지를 온전히 높이면 됩니다. 어느 새 but의 꼬리표는 떼 지고, 기쁘고 상쾌한 인생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주님! but(그러나)이라는 인간 실존의 꼬리표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겸손히 듣게 하시고, 내 생각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①의심-②실망-③회의-④갈등-⑤유혹-⑥좌절의 과정을 거친 후 100%의 온전한 ⑦순종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기쁘고 상쾌한 인생을 살게 하소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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