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3장] 요시아 왕의 죽음(역설,逆說의 죽음)
- Dana Park
- Jun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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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3장은 요시야 왕의 역동적인 신앙개혁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성전 수리 중에 발견된 율법 책을 토대로 하여 무너진 신앙을 새롭게 구축하는 반면, 과거의 잘못된 신앙의 악습들을 깡그리 말소시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요시아의 신앙개혁은 하나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로 남는다.
그런데 23장 후반부에는 성군(聖君) 요시아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다. 그는 8세라는 이른 나이에 등극하여 30년의 선전(善政)을 펼치다가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그의 죽음은 참 아쉽고도 큰 손해인 듯하다. 요시야가 죽은 당시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였다(대하 36:24~25절)]고 전한다.
너무나 아쉬워서 심정(心情)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요시야 왕의 죽음을 묵상해 본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열왕기 기자는 이렇게 전한다(29절).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개역한글이나 개정 번역에는 애굽 왕이 앗수르와 전쟁을 하기 위해 원정 길을 나선 의미로 번역하고 있으나 표준 새번역이나 영어 번역은 보다 구체적인 목적을 부연해준다: [그가 다스리고 있던 때에,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이 앗시리아 왕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 쪽으로 올라갔다(During Josiah's rule, King Neco of Egypt led his army north to the Euphrates River to help the king of Assyria).] 즉 당시 앗수르와 신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은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원정했던 것이다. 요시아는 그 바로 느고의 원정길을 막아서다가 전사(戰死)하였던 것이다.
요시아 통치 시절, 유다의 원수인 앗수르는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신바벨론은 급부상하는 시기였다. 요시아 왕을 비롯한 남 유다는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에 들떠있었다. 그들은 <인간적인 카운트다운>에 돌입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앗수르를 돕고자하는 바로 느고의 원정은 유다의 희망에 찬물을 껴 얹는 것과 같았다. 이는 요시야에게는 너무나 쉽게 인간적인 힘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 일로 요시야는 죽는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열왕기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25~26절).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즉 요시아의 선정이 므낫세의 악정을 극복하기란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동시대의 역사를 또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던 역대기 기자는 좀 더 부연 해석한다(대하 35:20~21절).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이 부분은 아주 특이한 장면이다. 왜냐하면 애굽 왕 바로 느고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요시아 왕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요시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22~23절).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즉 역대기 기자는 요시야와 남 유다의 판단과 행동보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앗수르가 쇠퇴하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날지라도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달려 있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좌우되지 않음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사실상, 열왕기 저자 역시 아무리 요시야가 선정을 펼쳤을지라도, 그것보다 그 이전 므낫세의 악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즉 남 유다의 역사를 일개 왕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시사해준다.
열왕기 저자나 역대기 저자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요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해 준다. 다된 일 같고, 당연한 결과로 여겨질지라도, 모든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그 분의 시간과 뜻에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나님의 뜻 앞에 자아(自我)가 죽고, 하나님의 의지에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사는 삶을 선택하게 하소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