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5장(2)] 성도는 약속과 은혜로 보존된다!
- Dana Park
- Jun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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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5장 후반부에는 요단 동편에 거주했던 두 지파 반의 족보를 기술하고 있다. 3절, 11절, 23절에 제각기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갓 자손은 르우벤 사람을 마주 대하여 바산 땅에 거주하면서 살르가까지 다다랐으니 우두머리는..., 므낫세 반 지파 자손들이 그 땅에 거주하면서 그들이 번성하여 바산에서부터 바알헤르몬과 스닐과 헤르몬 산까지 다다랐으며 그들의 족장은...]
그들은 야곱의 12아들들 중에서 르우벤의 후손들, 갓의 후손들, 므낫세 반지파의 후손들이다. 이들의 조상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요단 동편에 펼쳐진 광활하고 비옥한 초지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비록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는 했으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분배받지는 못했고, 그들이 미리 선점해 두었던 요단 동편 땅을 차지했다.
역대기 사가는 요단 동편에 자리 잡았던 두 지파 반의 족보를 왜 다뤘을까? 여기에는 2가지의 큰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 두 가지 이유는 <약속>과 <은혜>와 관련이 있다. 먼저 전자인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후손들은 약속의 땅에서 배제된 자들이다. 요단강 경계선상에서 서편이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은 약속과 별개로 그들이 용이하다고 여겼던 동편 땅을 선택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 이 두 지파의 수장 격 되는 르우벤의 후손을 빌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6절). 「그의 아들은 브에라이니 그는 르우벤 자손의 지도자로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로잡힌 자라」
즉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으면, 우선은 쉽고 편할 수 있을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후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앗수르 왕이 요단 동편을 삼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힘들어도, 고생하더라도,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 맞다. 성도는 주님 재림하시는 순간까지 구약(옛 약속들)과 신약(새 약속들)만을 붙잡아야 한다. 이 시대에 이것을 붙잡는 것이 어쩌면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약속 붙잡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의 말씀(약속)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은혜의 관점에서 볼 때, 요단 동편 두 지파들(르우벤과 갓)의 후손들은 하갈 사람을 위시한 연합군들과 전쟁을 치렀는데 이 때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다. 즉 4만 여명으로 10만 여명을 상대해서 이겼다. 그 이유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20절). [싸우는 중에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하갈 사람과 그들과 함께 있는 자들이 다 그들의 손에 패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답하셨음이라.]
이렇게 그들은 큰 은혜를 입었고, 그 후 요단 동편 거주지를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약속을 기반으로 삼지 않았던 그 은혜는 지속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녔다.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후손들이 명기된 이 족보의 끝자락은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25~26절).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 가에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도 햇볕과 공기와 비가 주어지듯이 자비하신 은혜는 공평하게 베풀어진다. 하지만 약속 안에 포함된 그 은혜의 본질(예수 그리스도)을 끝까지 간직할 수 없다면, 시간이 지나고, 위기의 상황이 지나게 되면 그 은혜마저도 쉽게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약속을 등한히 여겼고, 은혜의 본질을 상실했던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이 그토록 원해서 미리 선점해서 차지했던 그 땅에서 고스란히 뽑혀서 이름도 모르는 이방 땅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존재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리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성도의 존재감과 정체성은 약속과 은혜로서 보존된다. 살다보면, 점점 놓아야 할 것도 있지만 반드시 그리고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도 있다. 성도인 우리는 약속의 말씀과 은혜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 만큼은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성도는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 참 행복하다. 왜냐하면 지금 약속인 성경 말씀을 펼칠 수 있고, 그 속에서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 그리고 충만하다.
주님! 살다가 점점 놓아야 할 것과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약속의 말씀과 은혜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약속과 은혜 안에서 영원히 보존되게 하소서. 약속의 성취자요, 은혜의 본질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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